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_201708

예산 가야산의 다채로운 포용력

글 사진 || 김 규 순

풍수적 공간_가야
한국풍수학교(교장 박재락)가 2박3일의 하계풍수캠프(2017. 6. 30-7.2)를 열었다. 그들과 함께 예산 가야산에 기록된 풍수역사의 현장을 답사하였다. 가야산이라고 하면 고대 가야국의 상징적인 합천 가야산을 떠올린다. 가야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가야리(伽耶里)라는 지명은 여주, 경산, 안동, 고흥, 함안, 파주, 예천에도 있다. 가야는 ‘강’의 의미 또는 ‘소’의 의미, ‘거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있다. 예산에 있는 가야산은 백제국의 영역에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은 지난 1500년간 유불선의 공간으로, 풍수적 길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들의 흔적이 세월의 두께만큼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 가야산이다. 합천 가야산과 예산 가야산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역사성은 너무나 비슷하다. 

불가의 터전
가야라는 어원에는 불교적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인도의 불교 성지 부다가야(Buddhagaya) 부근에는 가야산이 있다. 가야는 고대인도어로 ‘소’를 의미하여 소머리산?우두산?가야산은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예산 가야산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원효봉이다. 북한산, 금정산, 천성산, 무등산, 청량산에도 원효봉이 있지만 예산 가야산의 원효봉 아래에는 원효(617-686)가 도를 구하러 당나라로 가다가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 득도하였다는 원효득도굴(元曉得道窟)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다. 더구나 가야산의 북쪽 능선에는 백제시대의 보원사지가 있고 그 영역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이 광채를 머금은 채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애삼존불상이 1500년의 세월에도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비바람도 범하지 못하는 산태극(山太極)의 길지에 불상을 새겼기 때문이다. 산태극의 머리 부분에 억년전에 만들어진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자연의 위대함과 종교의 위대함이 중첩되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신선의 땅
고운 선생은 난랑비서(鸞?碑序)에서 우리의 도를 유불선을 바탕으로 한 풍류도(風流道)라고 하였다. 그는 단군-박혁거세-동명왕-김가기를 잇는 우리나라 선가의 큰 인물이다. 그의 흔적이 화개초교 왕성분교 앞 화개천에는 세이암(洗耳?)이라 적힌 너럭바위가 있는데, 예산 가야산 옥병계에도 고운이 썼다는 세이암(洗耳?)이라는 각자를 찾을 수 있다. 세이암은 세상의 잡다한 소식에 더러워진 귀를 씻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고운선생이 서산에 태수로 부임한 기록이 있으니 그의 방문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또 기록에 의하면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고운의 무덤은 호서 홍산현(鴻山縣) 극락사(極樂寺) 뒤에 있다고 했으며, 비(碑)가 있는데 비액(碑額)은 공의 자필이고 비갈에 새긴 글은 후손 최흥효(崔興孝)가 썼다’고 했으니, 몇몇 사람들은 고운 선생의 무덤을 찾으려고 부여군 홍산면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세이암이 있는 계곡은 조선 영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병계 윤봉구가 가야구곡이라 칭했다. 관어대?옥병계?습운천?석문담?영화담?탁석천?와룡담?고운벽?옥량폭이 그것이다. 구곡(九曲)은 명망 있는 선비들이 소유하고 싶은 자연이었으며 동시에 문화공간이었다. 퇴계의 선유구곡, 율곡의 석담구곡, 우암의 화양구곡, 한강의 무흘구곡 등은 유학자들의 자연에 대한 고질병을 엿보게 한다. 구곡은 택리지의 산수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풍수의 발복 개념보다는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공간이다. 선비들의 구곡을 통한 자연찬가는 유가적인 관점보다는 선가적인 여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조선 왕실의 공간
가야구곡의 중간에 조선말기 풍수역사의 백미 남연군묘가 있다. 남연군묘는 원래 연천군에 있었는데 이하응이가 2대 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말을 믿고 가야사(伽倻寺)에 불을 지르고 승려들을 쫓아내고 탑을 파괴한 후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곳에 이장하였다. 남연군묘를 이장한지 7년 후에 둘째아들 이재황이 태어났고 그가 고종이 되었다. 풍수지리로 왕이 되었으니 센세이셔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왕의 직계손이 아니면서 왕으로 간택되기가 쉽지 않은데 이하응은 아버지 남연군의 발복에 의지하여 자기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실로 풍수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풍수지리는 이성계와 태종, 세종, 세조 그리고 정조를 이어서 조선왕실 풍수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조선말기의 풍수가 혹세무민의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가야산 옥병계 부근에 숙종의 후궁 명빈박씨의 묘와 숙종과 명빈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연령군 이훤의 묘가 있다. 명종의 태실과 헌종의 태실이 가야산의 남과 북에 각각 자리하고 있어서 가히 조선왕실의 공간이라 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영조의 비 정순왕후의 생가도 가야산의 끝자락인 음암면 유계리에 있었으니 가야산의 정기가 조선후기의 정치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조선 사대부들의 보금자리
가야산 서쪽 서산평야에는 정순왕후의 경주김씨 집안이 거주했고, 가야산 동쪽에는 화순옹주가 시집온 경주김씨 집안이 거주하고 있었다. 화순옹주의 증손자가 추사 김정희이다. 김정희 고택은 삽교천을 만난 오서산 줄기의 끝자락에 있다. 비록 가야산 기슭은 아니지만 삽교천을 흐르는 물은 가야산에서 내려온 물이므로 가야산의 혜택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술혼은 가야산과 덕숭산의 정기를 머금은 듯하다. 가야산과 덕숭산의 웅기가 예술혼을 불러일으키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근대의 인물로는 윤봉길 의사가 있다. 그는 덕산의 도중도(島中島)에서 태어났다. 그는 과단성 있고 정확하고 담대한 인물이었다.  도중도란 가야산과 덕숭산, 수암산에서 흘러온 대치천이 만든 섬으로 한반도 안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그는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을 현장에서 즉사시켰다. 이에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대군도 못한 일을 한 사람의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고 감격해 했다. 이후 장개석은 조선의 독립과 무장투쟁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다.

[사진설명]

가야봉을 배경으로 원효봉에서
가뭄 끝에 비구름이 가야산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한국풍수학교 B팀은 끝까지 원효봉에 올라 구름에 가려진 가야봉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다.

구름에 가려지기 전의 가야봉

원효봉에서 본 덕숭산

운무에 휩싸인 예산평야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_(국보제84호)
자연이 보호하는 지형이 길지이다. 이런 곳에 자연의 기운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자연의 기운과 종교적 기운은 상통한다고 본다. 그 기운을 빌어 마애삼존상은 이곳을 찾아온 모든 중생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한국풍수학교의 일원들도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예산 가야산 옥병계의 세이암(洗耳巖)
세이암이라는 글자 아래에 외로운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孤雲)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고운선생이 바위에 글자를 새겨 놓은 것으로 해운대?쌍계?석문?세이암?월령대?청룡대 등이 전한다. 세이암은 귀를 씻는 곳이므로 물이 있어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길로 세이암은 물과 동떨어져 있다. 정비를 하더라도 문화재의 의미를 살렸으면 좋겠다.

남연군묘
19세기 조선 왕족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풍수에 대한 집착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다. 이곳에 아버지 남연군을 이장하고 태어난 그의 아들이 고종이 되었으니 풍수적 발복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의 땅이지 않는가. 2대 천자를 배출한 곳이지만, 조선의 멸망을 초래하였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명당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명종태실
조선 전기 임금의 위엄과 권력을 말해주는 태실이다. 명종의 태실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그야말로 왕의 관점이다. 풍수적 표현으로 산천이 임금을 향해 조응하는 곳이다. 전국에 임금과 왕자의 태실을 설치하는 것은 좋은 자리를 사대부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선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의 왕실은 역성혁명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일제 때 파헤쳐져 흩어진 석물들을 김종필씨가 서산목장을 조성하면서 복원하였다.

헌종태실
옥계저수지 옆에 위치. 일제 때 파괴되어 널 부러져 있던 것을 세워놓았고, 태실비는 산 아래 옥계저수지에서 발견하여 인양하였다. 2017년7월1일에는 수중에서 사방석을 발견하여 인양했다.

추사고택과 추사 묘
추사고택은 만년영화지지가 있다는 오서산의 맨 끝 자락에 솟아오른 용산(74m)에 기대고 지은 집이다. 추사 김정희는 주산인 팔봉산의 정기를 타고 났다. 팔봉산은 추사고택에서 30리 떨어진 예당저수지 옆에 있다. 설화에 따르면 그는 24개월 만에 태어났는데, 추사고택에 있던 우물이 마르고 팔봉산의 초목이 시들었다가 그가 태어난 후 우물과 초목이 원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육관도사 손석우의 묘
남연군 묘에서 1키로 남짓한 거리에 손석우의 묘가 있다.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한 일로 일약 풍수사로서 유명세를 탔으며, 풍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풍수를 공부하여 풍수지리를 터득한 것이 아니라 영매를 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년에는 영매를 통한 명당 적중률이 높지 않아 일각에서 사기꾼이라 매도당하여 불명예스러운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의 묘에서 풍수적인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