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탐방 ]

남헌 이준기李準基의 천풍지수天風地水

2010년 여름 모원여 회원이 남헌南軒 선생의 강의를 들어보자고 강력히 추천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남헌선생을 모시게 된 것이 서울풍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남헌선생은 부인과 자신의 건강문제로 풍수활동을 잠시 접고 있었는데, 우리와의 만남으로 서서히 강의활동을 재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울풍수 회원들과 수차례의 간산을 다녔는데 남헌선생을 따르는 동지분들을 초빙하여 같이 다니기도 했다. 그 후 남헌선생의 권유로 남헌풍수지리연합회와 의기투합하여 서울풍수 회원들과 합동으로 간산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남헌선생은 신미년(1931)생으로 대한민국 풍수사 제1세대이시다.

이름을 날린 1세대 풍수사로는 하남 장용득과 사주학에서 영역을 넓힌 청오 지창룡, 그리고 영매의 힘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육관도사 손석우씨가 있었다. 그 당시 종로에서 강의하던 분으로는 허만허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그의 풍수가 그래도 짜임새가 있었다고 전한다.

남헌 선생은 1974년부터 서울 종로에서 풍수 강의를 했다. 지금도 현역 활동을 하는 풍수학인인데, 올해로 40년 성상을 풍수학에 심취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지리진보 전편> (1978), <지리진보 후편>(1986)과 10년 전에 발행한 역작 <천풍지수>(2004)가 있다. 남헌 선생은 허명을 쫓기보다는 풍수학을 바로세우기 위해 젊은 세월을 풍수연구에 바친 분이다. 남헌의 강의는 유명하여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초빙되었는데, 경주, 안동, 대전, 청주, 유구, 대구 등지로 바쁘게 다녔다. 충북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에서도 오랫동안 강의를 하였다.

 

한문의 터득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때에는 서당에 나가 한문을 섭렵했다. 종형의 장인이신 김시묵 선생에게 사서를 배웠고, 영천의 고금당 신억 선생에게서는 시경을 배웠으며, 주역은 대구의 조규설 선생께 배워 고문을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풍수에 더욱 의문을 품었고, 나이 드신 분들과 답산을 하면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으나 의문은 커져만 갔다. 이 당시의 풍수란 생기법과 파구포태법, 구성법 그리고 비결풍수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의 발발로 건국대학교 상경대학에 다니던 선생은 학도병으로 참전하였고 안강-영천 전투에 배치되어, 대부분의 전우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자신만은 살아남았다.

요산동지계

휴전이 되고 생활은 팍팍했지만, 풍수에 대한 열의는 여전히 뜨거웠다. 그 때 과수원을 하던 송천영감의 오두막에 모여서 간산모임을 결성했다. 지방의 유력자와 몇몇 지사들과 함께 묘지답사를 다녔다. 그리고 경주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요산동지계’라고 이름을 짓고 심상권沈相權씨를 계주契主으로 추대했다. 이 당시의 모임은 회자會字를 붙이지 않았고 대개 계자契字를 붙였다. 풍수가 곧 효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일반인들도 관심이 많았던 시기인지라 간산활동을 통하여 지역 인물들과 지방 유지들과 교류가 많았다. 요산요수회의 활동영역이 점차 안동, 영주로 확대되었고 회원의 수도 많이 줄어났다. 봄에는 경주와 가을에는 영주로 돌아가며 간산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하남 장용득씨도 참가하고 있었다.

심봉섭 국회의원

휴전이 되고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 당시 사촌은 16명, 육촌은 33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으니 할아버지의 재산이 있었다고 해도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고향에서 접장도 하였고, 그 후에는 환지사換地士로 회사를 다녔다. 환지사란 국가가 농지정리를 하면서 땅을 재배분 해주는 역할을 한 회사였다. 그러던 중 친구인 심봉섭씨가 신민당(야당)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남헌선생을 선거본부장으로 초빙한 것이 인생행로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남헌선생은 이미 풍수로 지역 유지들과 문중의 어른들과 교류가 돈독했던 터라 선거본부장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심봉섭씨는 1971년5월26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지역구와 서울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보좌관 역할이 필요한 심봉섭 국회의원의 간곡한 부탁으로 남헌선생이 서울로 동행하게 되자. 그 동안 남헌선생이 이끌어오던 풍수모임인 ‘요산요수회’가 와해의 위기에 처해졌다.

서울에서 풍수를 펼치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요산동지계’를 와해시킬 수 없어서 동지들을 서울로 불러 올렸는데, 김강동씨와 장용득도 따라 올라왔다. 황금여관에 여장을 푼 회원들이 마냥 먹고 놀 수는 없는 상태인지라 남헌선생이 김강동씨와 장용득의 이름으로 서울신문과 한국일보에 풍수광고를 21번이나 내었다. 풍수를 문의하고자 전화가 오기 시작하였지만 동지들은 풍수학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던 남헌선생께 전화 상담을 전담시키고 현장 출장과 명당 추천은 동지들이 담당했다. 그러던 중 1972년에는 이병철회장의 선친 묘소를 정하여 이장하기도 했다. 직접 산신제를 지내고 동지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이 대목은 필자가 정암 김종철씨께 직접 들은 바가 있다.

풍수 바로세우기

서울생활에서 남헌선생은 풍수학 연구에 있어서 한층 도약하는 기회를 가졌다. 경주에서는 풍수 서적을 얻기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지방에서는 도서관에 책도 별로 없던 때였다. 창경원의 장서각, 서울대 규장각, 남산 국립도서관, 천안도서관, 동국대학교 도서관 등을 오가면서 풍수 고서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의 한문 실력이 든든한 원군이었다. 고서의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옳은 말과 그른 말을 구분하게 되고 현장과 대조하면서 풍수의 진가를 판단하게 되었다. 그는 도표를 그려놓고 하나씩 검증하기도 하고 덧붙이기도 하면서 풍수지리의 정부正否를 판단하며 풍수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진력을 다했다. 독학으로 평소에 가졌던 풍수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면서 형기풍수학의 초석을 놓았던 것이다.

풍수강좌

신문에 광고가 나가면서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강의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남헌선생은 강좌를 개설하였다. 에 광고를 내고는 종로에서 강의를 열었다. 그가 종로에서 풍수학 강의를 하면서 배출한 인물도 상당하다. 양영두, 윤병하(1기), 이승찬(4기), 김종철(6기), 박시익 박사(9기)도 배출했다. 김종철씨는 적성에서 농방을 하던 사람이었고, 이승찬씨는 화신에서 아이스케키를 팔던 사람이었다. 남헌의 강좌를 수료한 사람은 하남과 함께 답산과정을 거쳤는데 ‘요산동지회’라고 명명했다.

풍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시기라서 명사들과 교류도 많았다. 특히 대기업이나 문중의 핵심인물들이 강의를 듣곤 했다.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顯과도 교류를 하였는데, 수운회관에서 서예를 가르치던 여초는 남헌선생에게 강의공간을 내어주기도 하는 등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그에게 풍수학 강의를 들은 수강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풍수동호회를 조직한 것만 10개가 넘는다. 지금도 많은 동호회가 운영되고 있다. 음양지리학회, 지리동효회, 지리동인회, 지리정풍회, 남헌지리학회 등등

지리진보와 김강동

<지리진보 전편>을 쓰기 위해서 1976년 겨울에 계룡산에 들어갔다. 풍수관련 서적들에서 메모한 내용들을 읽고 의미를 되새기고 고심을 거듭하며 책을 썼는데, 김강동씨가 자주 방문을 하며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그런 까닭에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 <지리진보>를 김강동씨와 공동 저술한 것으로 만들었다. 저술 활동은 쉽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앞뒤가 꽉 막혀 진전이 없을 때에는 기거하던 절에서 10리 길을 걸어서 마을까지 와서는 막걸리를 마시곤 했는데, 술이 취한 채 귀가하던 중에 섬광같이 뇌리를 스치면서, 막혔던 내용이 풀리기도 했다. 저서가 나온 후로는 강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남헌선생이 전국을 순회하며 강의를 할 때 김강동씨와 함께 한 조를 이루어 다녔다. 김강동씨는 주로 강좌를 수강한 동지들과 현장활동을 했다. <지리진보 후편>은 1985년에 청량산에 들어가서 저술하여 1986년에 발간했다.

혈파와 분금삼법

남헌풍수지리의 특색은 혈파와 분금삼법으로 정리된다. 그는 이것을 찾아내는데 굉장히 어려웠으며, 수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도인들이 비인부전非人不傳으로 숨겨놓은 핵심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현장 임상연구에서 혈파가 없으면 길지가 될 수 없으며, 분금삼법으로 지령을 연결할 묘법을 찾아내었다고 강조하셨다.

이 법을 주장한 분은 아직 찾지 못했다. 풍수학에서는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는 이 주장을 하기 전에 많은 고심을 했다고 토로하셨다. 고서에 비슷한 글자라도 있었다면 당신의 고심은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풍수사를 경계하라

풍수사라고 다 같은 풍수사가 아니다. 풍수를 제대로 올바르게 배우고 자신이 터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한두달 또는 일이년 배우고서 재빠르게 돈벌이에 나서는 반풍수, 풍수사를 따라다니며 학문이 아닌 어깨너머로 풍문으로만 배운 얼풍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남의 말을 옮기며 사용하는 부평초풍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풍수를 경계해야 한다. 재야학문인 까닭에 바른 길로 안내해줄 선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며 사악함이 깃들기 쉬운 학문이므로 정도를 걸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럴수록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며 수양修養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남헌선생은 몸소 본보기를 보여주신 풍수사이다.

돈보다 명예를

동양학에서 재극인財剋印이라는 말이 있다. 재물이 공부를 방해한다는 의미이다. 돈이 많거나 애인이 많으면 공부할 생각이 줄어들기 때문이며, 돈을 벌려고 애를 쓰다보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성인이신 공자도 젊은 시절 장례사 또는 풍수사로 삶을 영위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소위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까지 발견된다. 그러나 공자가 상가집을 드나든 것이 호구지책에 매달린다면 오산이다. 상례(장례)는 그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禮이다. 영어에서도 last honor라고 표현되고 있다. 관혼상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상례이다.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려야 하는 피붙이와의 영영 이별의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상황을 악이용하여 돈벌이하는 양상이 나타나곤 했다. 공자는 오로지 예禮를 바로세우고 바른 세상으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상가집을 드나들었다. 명당名堂장사를 하는 명사名士가 아니라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명사明師였던 것이다.

돈에 눈이 먼 명사名士에게는 명당明堂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이 풍수학계의 정설이다. 풍수사는 E아장사를 떠나서 오로지 감정사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풍토에 휩싸이지 않고 정직하고 바른 길로 걸어갈려면 맑은 정신력 즉, 신명神明을 가져야 가능하다. 신명神明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유혹도 그를 오염시키지 못한다.

남헌선생은 풍수학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 돈을 벌려고 풍수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수사들은 대개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벌었다. 개중에는 정당하게 돈을 번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필자도 찾기 힘들다는 명당을 추천하는 풍수사가 어떻게 그리 많은지에 대해 놀랐다. 남헌선생은 돈이 아닌 학문 즉, 풍수를 바로세우고, 후학을 키우고, 잡스런 내용이 많이 섞인 풍수학에서 순순 풍수학을 가려내기위한 작업에 한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물이 <천풍지수>(2004)이다. <천풍지수>는 그의 역작으로 자신의 모든 풍수를 쏟아 부었다고 장담하셨다. 2013년 맹춘지절에 <남헌지리답산가>를 완성시키려고 동분서주하고 계신다.

서산대사의 답설踏雪이 생각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쌓인 길 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자취가 뒤에 올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qsoon]